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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 내밀예찬- 김지선

by 행복 수집가 2022. 10. 3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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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예찬(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 김지선

 

내밀예찬(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 김지선


내밀예찬
번호: 72
완독일: 2022년 9월 21일
작가: 김지선
쪽: 184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카테고리: 에세이/산문
🌟/5: ⭐️⭐️⭐️
💬: 내향인이면 어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 을 통해 알게 된 프랜 레보위츠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미 무수히 많이 공유되었지만 나 역시 어느 한 귀퉁이에 그의 어록을 기록해두고 싶다.
“책을 버릴 수가 없어요. 사람을 버리는 것 같거든요. 오히려 버리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지만요.”
“말하는 것의 반대는 듣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죠.”
“제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좌석은 뒤쪽 통로 옆이에요. 나갈 수 있으니까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극장 좌석도 뒤쪽 통로 옆이다. 같은 이유로.)

자신이 웃고 싶을 때만 웃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힘이다. ‘웃지 않음’으로 인해 한 개인의 튼튼한 성채가 만들어지며, 이는 세상이 그를 만만하게 대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어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숨 쉬듯 굴복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한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는 공적 공간 속의 사적 공간이 매우 좁은 도시다. 마트 계산대에서 줄을 설 때 느껴지는 뒷사람의 존재감이나 공항 컨베이어 벨트에서 짐을 꺼낼 때 저지선 앞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보면 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고양이들이 대체로 인간의 실체에 타격받지 않는 이유는 인간에게 거는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일거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때마다 그 아름다운 ‘장소’위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 숨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열에 여덟은 후자가 이기고, 결국 나라는 존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기어들어간다.

얼마 전 트위터에 1990년대 압구정 풍경이 담긴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당시 ‘오렌지족’쯤으로 분류 됐을 젊은이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활달히 거리를 걷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게시한 이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멘트를 곁들였다. ‘오, 아무도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아.’

세상의 모든 파티션이 사라진다면 현대인의 정신 질환 종수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모두가 벽을 허물라고 말라고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벽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음식물이나 물 흔적이 남을 수 있는 나무 상판 위로 수천 번 행주로 훔쳐도 괜찮은 유리 상판이 올려져 있는 4인용 식탁은 기본적으로 침묵을 학습하는 장소였다. 엄격한 가정에서는 “밥 먹으면서 말 하는 거 아냐”라는 핀잔이 오갔고, 그렇지 않더라도 수천, 수만 번의 식사를 통해 가족끼리는 할 말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는 곳.

•••
카페의 일화가 생각난다
매일 항상 조용히 와서 음료 두 잔을 주문하고 한시간 정도 자리에 앉다가 가는 손님이 있었다.
카페 사장은 매일 와 주어 고마워서 어느날 매일 오시는데 오늘은 음료를 서비스로 드리겠다고 했다.
손님은 쭈뼛쭈뼛대며 음료를 받고 잠시 앉아 있다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그 손님은 오질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카페 사장은 단골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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