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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참 괜찮은 태도 - 박지현

by 행복 수집가 2022. 11. 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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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참 괜찮은 태도 - 박지현
 

[인문] 참 괜찮은 태도 - 박지현


74.
박지현
메이븐
인문
312쪽
2022/10/04 완독일
⭐️⭐️⭐️⭐️
💬
사람 사는 이야기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생각하다가 우연히 다음과 같은 트윗글을 발견했다. 
“마음이 너덜거릴 조짐이 보이면 우선 자기 내면의 아이를 대접해 줘야 한다. 어제 저녁 식사 후에 딸기 한 대접 먹이고 11시 전에 재웠더니 상태가 많이 좋아짐.”
아, 나도 오늘은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맥주 한 캔을 대접해 주고 얼른 재워야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려울지도 모를 질문을 던져 보았다.
“죽음이 어떤 의미로 느껴져요?”
”이 세상 일을 다한 거요. 자기가 할 일을 다한 거요.”
“할아버지는 그 ‘할 몫’을 다하고 떠나셨을까요?”
”네, 충분히 다하셨어요.”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우리는 가까울수록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걸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착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나를 덜 사랑하는 것이라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날 차 안에 무겁게 깔린 침묵이 그 증거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뭐든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서로를 오해한 채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 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김수환 추기경이 쓴 ‘우산’이라는 글이 일부이다.

“고진감래, 흥진비래. 그런 말 들어 봤어? 인생의 행로라는 것이 맨반로 캄캄한 밤에 가시밭길을 걷는 거야. 하지만 참아야 해, 쓰다고 해서 뱉지 말란 말이야. 써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와. 그렇게 걷다 보면 가시밭길을 넘어가. 그럼 날이 밝아 오지. 사람 인생이 그런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잘 살고 편안하다고 해서 자만하지도 말고.”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진심으로 지은 밥을 먹으며 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것이다.”

가뜩이나 사람 없는 마을, 할머니는 매일 오후 2시면 거동이 불편한데도 방을 나섰다. 멍든 얼굴도 가리지 않고 문 앞에 걸터앉아 아픈 무릎 훤히 내보인 채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알고 보니 할머니가 기다리는 건 오후 2시의 햇살이었다. 그게 할머니가 매일 기다리는 친구였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왜 자꾸 후회 없냐는 질문을 하세요?”라고 되물었을 때 속으로 놀랐다. 어쩌면 나는 성공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도전을 했고 그래야 안심하며 최선을 다해 왔던 건 아닐까. 10%든, 90%든 확률일 뿐 결과를 보장하는 게 아닌데 그런 안일한 선택 때문에 또 다른 기회를 놓쳐 버린 건 아닐까.

나는 그때 깨달았다. 잡고 올라가던 사라리가 무너지면 다른 사다리를 찾으면 된다는 것을.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잊지 않고 묵묵히 다리의 힘을 기르면 사다리는 나의 의지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적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살아가다가 이게 맞나 싶고, 그럼 뭘 해야 좀 나아질지 답을 찾으려 방황할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자꾸 흔들릴까’ 자책을 했었다. 그럴 때 위안이 된 말이 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이었다. 방황한다는 것이 약해서가 아니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증거라고 지친 나에게 그가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방황을 하고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제가 세월호를 추모한다고 말하면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 하면서 정치 얘기들 많이 하시는데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추모하는 것뿐이에요.”

문득 근대 신여성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의 말이 떠오른다.
”남편의 아내이기 전에, 내 자식의 어머니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은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롭다고 강아지를 입양하면 안 됩니다. 예뻐할 대상이 필요해서 강아지를 입양하면 안 됩니다. 과시욕이나 소유욕으로 강아지를 입양해서도 안 됩니다. 얼마나 비싼 사료를 주고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강아지 외모를 꾸미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강아지에게 주인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가족이 될 수 있습니까? 강아지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철학자 김진영은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 집필한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주영이 화실 가는 날. 외출을 망설이는 등을 떠민다. 내 재촉을 못 이겨 거울 앞에 앉은 모습을 바라본다. 작고 동그란 몸. 늘 웃음을 담고 있다가 아무 때나 홍소를 터트려서 무거운 세상을 해맑게 깨트리는 웃음 항아리 같은 몸. 나는 이 잘 웃는 여자를 떠날 수 있을까.”

법정 스님은 살아생전 최인호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늙음이나 죽음은 결코 두려워할 게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도 살 만큼 살았으면 그만 물러나야지요.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이란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대신 내가 지금 이 순간순간을 얼마나 나답게 살고 있는지가 우리의 과제지요. 현재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 또 이것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은 법정 스님의 에세이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두지 않고 거듭거듭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 이런 사람은 이다음 생의 문전에 섰을 때도 당당할 것이다.”

묵은 하루가 가고 새로운 하루가 찾아왔다.
오늘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하루를 가슴 짓누르는 부담으로 여길 수도, 설레는 약속처럼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을 위한 날이 밝았다며 기뻐할 수도 있고, 씻지도 않은 채 기력도 없이 무덤덤하게 일과를 시작할 수도 있다.
오늘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 본다.
안젤름 그륀 신부의 책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의 한 구절이다. 나는 글을 읽으며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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