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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징비록⟫

일상

by 행복줍기 2020. 9. 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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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징비록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오늘에 되새기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유성룡
홍익출판사⎜역사⎜372페이지
82권⎜2020.09.03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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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중요성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할 때
엉망진창인 조정
자기 살길만 찾는 간사한 인간
중요한 게 뭔지 모르는 멍청한 리더
불쌍한 백성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면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다.
우리끼리 싸우기만 하면 언젠가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다.

징비록은 무엇인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그중에는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에 있었던 일도 더러 기록하였으니, 그것은 왜란이 발발한 까닭을 밝히기 위함이다. _17p

서경에 이르기를, “나는 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징비록⟫을 지은 까닭이다. _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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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아픔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며 기록한 징비록이다.
이런 과거의 아픔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나라는 또 한 번 일본에 처참히 점령당한다.
바로 일제강점기 시대다.
지난 역사에서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또다시 일제강점기가 일어난 건 인재라고 본다.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위기가 오면 후회하고 반성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결국,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역사적 위기마다 피해를 보는 건 국민임을 깨달아야 한다.

신립은 날래고 예리하기로 당대에 이름이 나 있었지만 계책과 전략에는 서툴렀다. 옛 사람이 말한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적에게 나라를 내주게 된다’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후회하여도 이미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훗날의 경계로 삼을 만하기에 상세히 적는다. _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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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을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다.
조정에서는 서로 자신의 공을 높이려고 온갖 계략이 난무하고 장수는 왜군이 무서워 도망가고 나보다 잘난 사람은 시기하고 공을 깎아 내리는 걸 보니 임진왜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나마 이순신 같은 훌륭한 장수가 있어 현재 우리가 편안히 밥을 먹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징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이후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었던 일본군은 칼을 버리고 낫과 호미를 잡아야 하는 것에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그들의 불만은 조선을 침략해 도자기 같은 전리품을 거두고 포로를 포획해 노비로 삼는 데에서 비로소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 ‘사람 사냥 전쟁’ 등으로 부르는 것이리라. _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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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 속에 있는 지금의 일본 사정과 비슷해 보인다.
자국 내에서는 도저히 위기를 헤쳐나갈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옆 나라인 우리에게 시비를 걸고 어떡해서든지 위기를 탈출하려고 하고 있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나라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언제 또 일본이 우리나라에 위협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이미 경제적으로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규제를 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단어만 아닐 뿐 전쟁과 마찬가지다.
미리 준비했다면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지도 못했을 거다. 

부원수 신각이 양주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왜군 60여 명의 목을 베었지만 조정에서는 선전관을 보내 군영에서 그를 참수하였다. _98p

“나라의 녹을 먹으면 나라를 위하여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화된 자의 도리이다. 지금 나라가 이처럼 위태로워 끓는 물과 뜨거운 불이라도 피해서는 안 되는데, 어찌 한번 가는 일을 어렵다고 하는가?” _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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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젊은 사람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이었다.
대부분 도망가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 설문조사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내 생각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선조가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앞장서서 싸웠나 도망갔나를 보면 된다.
지금이라도 다를 게 없다.
전쟁 나면 분명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모두 제 살길 찾아 도망갈 게 뻔하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3국인 한∙중∙일만의 전투는 아니었다. 육이오 전쟁이 남한과 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던 것처럼, 임진왜란 역시 동아시아를 둘러싼 아시아는 물론 유럽인까지 포함된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_140p

그러나 선조는 원균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명과 일본의 강화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물러나는 왜군을 뒤쫓아 토벌하지 않는다며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통제사로 삼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불화는 전 수군의 불행,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는 참담했다. _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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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쳐들어와서 목숨을 걸고 싸워도 부족한데 왜군도 아닌 같은 편끼리 싸우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화가 난다.
요즘 시대도 그렇다.
누군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도 막상 승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학연, 지연 등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물론 모든 회사가 다 그렇지는 않다.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함대 편성으로는 구사하기 어려운 학익진 전법을 꾸준히 연습하여 실전에서 활용한 이순신 수군의 역량이 바탕이 되었다. 이순신은 병서의 기본 진법 중 하나인 학익진을 수군 함대의 진법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화력이 열등한 왜군의 함대를 섬멸했다. _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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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과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전쟁에 대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 나라가 국방비를 매년 꾸준히 증가시키는 이유와 같다.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국방비는 매년 증가할까 생각해봐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을 위해 대비를 해야 한다.
세계 국방비 순위를 보면 왜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영천성 전투는 의병장이 연합군을 편성하고 관군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전투를 수행하고 승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도 더욱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 
반변 전투 과정에서 관군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과 승전 이후 공로를 가로챈 거짓 보고가 횡행했다는 점은 이 전투가 남긴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_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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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의병의 활약이 컸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관직에 있는 장수만 보상을 받았지 실제 목숨 바쳐 싸운 의병은 그냥 희생양일 뿐이었다. 

숙종 때 이민서는 이순신이 일부러 죽을 장소를 노량으로 정하고 갑옷을 벗고 적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며 자살설을 제기했다. 이민서에 따르면 의병장 김덕령의 억울한 옥사 이후 곽재우 같은 의병장도 은둔할 곳을 찾아야 했으니, 이순신 역시 자신의 운명을 알고 미리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순신의 죽음과 관련해 자살설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_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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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을 읽고 이순신 장군이 자살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왜군을 물리치라고 장수를 보내 놓고 큰 공을 세우면 공을 깎아내리고 죽이려고 하니 이순신 장군도 이 전쟁이 끝나면 다시 처참하게 죽을 거 같다는 느낌이 왔을 것이다.

오늘 밤은 달이 매우 밝다. 왜군은 속임수를 잘 써서 달빛이 없을때도 우리를 습격할 수 있지만, 달빛이 환할 때도 우리를 습격할 수 있다. 그러니 엄중하게 경계하고 대비해야만 한다.” _2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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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전해 보일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봐도 기습을 당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기습이란 상대가 방심하여 아무런 방비도 안 했을 때 일어난다.
기습을 일어날 걸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류성룡이 언급하고 있는 임진왜란을 암시하는 흉조, 그중에서도 청어의 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는 당시의 공납 제도를 알고 이해하면 더욱 흥미롭다. 잡히지도 않는 청어를 10년 동안이나 공납 물품으로 받아온 조선 조정의 무지와 이에 대처하는 조선 백성들의 애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_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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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무지함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런 무지함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제대로 된 군주가 없다.
백성만 눈물 흘리고 피해를 본다.
돈과 권력을 가지면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실제로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공신 책봉을 할 때,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공신인 선무공신보다 피난길을 수행하고 호위한 호성공신의 규모를 몇 배 넘게 선정했다. 일등 공신에 이순신, 원균, 권율 같은 관군의 장수들만 선정되었을 뿐이다. 특히 칠천량 해전의 패장인 원균을 일등 공신으로 책봉한 것은 선조와 조정의 대신들의 선무공신 선정이 얼마나 불공평 했는지를 보여준다. _3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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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쳐들어 왔을 때 도망갔으면 왜군을 물리친 다음에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너무 평화로운 시대가 장기간 이어져 오다 재수없게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대비할 틈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도망갈 수 밖에 없다는 핑계를 될 수는 있다. 
선조가 폭군은 아닐지라도 백성을 도탄에 빠르리게 한 잘못은 책임져야 한다. 
왜군이 무서워서 도망간 것도 문제지만 전쟁이 끝난 후 불공평한 공신 책봉과 전쟁에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도 안한건 지탄받아 마땅하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 조선 시대가 더 빨리 붕괴하였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나라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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