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관하여
정여울
한겨레출판사 ∙ 에세이 ∙ 268p
107권 ∙ 2021.10.06 읽고
마흔이 되자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마음의 회로가 비로소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자, 소질도 없는 연기자 놀이는!’
어느 순간 내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절은 남이 보는 내 모습이 아닌 내가 보는 내 모습을 결정하는 중요한 마음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집은 빚더미에 앉았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11년 동안 고슴도치처럼 살았다.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 아무도 내 상처 안으로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상처를 꺼내보며 대면하는 순간은 미칠 듯이 고통스럽지만, 상처를 꺼내보는 순간 내 안에서 ‘그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커다란 힘’도 함께 나온다는 것을.
예민한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말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표현하면 뜻밖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있다.
두려움을 버리고 가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가는 것이 삶임을.
“엄마가 해준 음식이 엄마 집에서는 맛있는대 이상하게 우리 집에 가져오면 맛이 없어져.”
엄마의 잔소리와 엄마의 눈빛, 우리의 추억이 남아 있는 집 안 구석구석의 분위기와 살림살이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낸 아우라가 함께 있어야만 엄마 집의 엄마 밥맛이 나는가 보다.
어떤 분노도 아름다운 음악이나 그림 앞에서는 오뉴월에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예술은 고독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이기도 하다.
가슴이 답답할 때, 재클린 뒤프레가 연주한 <콜 니두라이(Kol Nidrei)> 를 듣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한낮에 눈물 쏙 빠지게 매운 떡볶이를 먹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맛은 없고 몸에만 좋은 샐러드를 먹으면, 밤에는 떡볶이보다 훨씬 더 맵고 더 짜디짠 짬뽕 국물을 찾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삶이란 이렇다. 알 수 없는 인연의 고리들이 한 올 한올 빗어내는 찬란한 감사의 축제, 그것이 바로 삶이 아닐까.
마치 익숙한 단골 병원을 찾듯 책을 펼친다.
마치 언제든 모든 이의 아픔을 받아줄 것만 같은 따스한 품을 지닌 커다랗고 푹신한 토토로 인형처럼, 책은 거대한 요람이 되어 내 전 존재의 고민과 슬픔을 완전히 다 받아준다.
▫▫▫
나이가 들면서 좋은점 하나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점이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점점 사라져 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다보니 자유로워 지는 것 같다.
내 인생인데 남들 눈치보며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막상 남들은 나에게 별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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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안 좋은 점도 있다.
괜히 그냥 아프다.
눈물이 많아진다.
부모님은 나이가 더 많아진다.
살이 안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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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고는 하루가 참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기억 할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난 책을 읽는다.
책이 있어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현실에서는 하루지만 책 속에 들어가면 몇 십년을 경험 할 수 있다.
책만 있다면 과거 미래 현재 어디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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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뿐인 인생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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