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에세이/산문] 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by 행복줍기 2022. 10. 23. 10:50

본문

320x100
반응형

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김영사
에세이/산문
308쪽
2022.09.19 71번째 완독

코로나19의 살풍경이 시작될 때 즈금 첫 장을 열었고 거리두기가 중단될 때 마지막 장을 닫았습니다.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책을 펴냅니다.

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잠시 후 역 안으로 뛰어 들어온 소년이 꽁꽁 언 손을 녹이려고 난로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선반위의 장갑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소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선반으로 다가가 장갑을 손에 끼었습니다. 장갑은 따뜻했고 소년은 행복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제때 하지 못한 캐치볼이 늘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제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해 놓쳐버린 것들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의 캐치볼을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기왕이면 당장이요.

사랑은 두 사람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일 겁니다.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수습할 방법을 결정하는 순간에 정해집니다. 벌어진 일을 사과하지 않고 배우지 않고 교훈을 얻으려 하지도 않으며 끝내 거짓으로 무마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런 태도는 아주 잠시 도망칠 구석을 낳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다른 거짓말을 자꾸 덧붙여야 합니다.

무고는 끔찍한 범죄입니다. 괴롭힘을 목적으로 한 무고는 잠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고 대상의 삶과 영혼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하며 궁극적으로 진짜 학대 피해자들의 진실을 찾는 여정에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을 남깁니다.

살아가면서 편견을 아예 버리고 사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만 타인을 편의대로 나쁘게, 혹은 좋게 평가하고 단정 짓는 태도다 상상하지 못할 참극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건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반응형

 

© elsbethcat, 출처 Unsplash

 

이웃나라에 고통을 주고 싶다는 원색적이고 치졸하며 납작하기 짝이 없는 말들 앞에서, 저는 오히려 그들을 걱정하게 됩니다. 남 탓에 골몰하여 매지할수록 더욱 초라하고 시시해지는 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주취감경을 없애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성인이 자기 선택과 의지에 따라 술을 마시고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러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런 상태를 유발한 행위 자체에 이미 위법성이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다섯 개의 강이 등장합니다. 죽으면 누구나 건너야만 하는 강입니다.

밤이 되면 거리는 다시 취객들로 넘쳐나겠지요. 그 밤길을 바쁘게 달릴 구급대원이 폭행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주고자 달려온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세상을. 제아무리 꼬부라진 혀라도 최소한의 염치 앞에선 바로 펴지는 세상을 빌어봅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친구를 엘사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너는 엘사 1, 너는 엘사 2, 이런 식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봤더니 LH, 그러니까 임대 주택에 사는 아이를 부르는 멸칭이라고 하네요.

불편한 책을 사랑합시다. 가장 위태롭고 혼란스러울 때, 불편한 책 속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지혜와 평정을 가져다줄 겁니다.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입니다. 아직도 처음 그 첫 번째장을 읽었을 때의 두근거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강인함이란 하늘을 날고 쇠를 구부리는 게 아닌, 역경에 굴하지 않고 삶을 끝까지 살아내며 마침내 스스로를 증명하는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bank_phrom, 출처 Unsplash

살다 보면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하지만 경험해본 자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혹시 창피를 당할까 봐 무언가 미루고 있는 분이 있나요. 미루지 말고, 뒤돌아 도망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당장 실행하세요. 잘될 겁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직면했을 때 내게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멋진 인생」은 이 사실을 늘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참 좋습니다.

무언가를 영영 잃어버려 찾아 헤매고 있는 분들이 계시나요. 어떻게 하면 그걸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시간을 되돌려 상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분이 계시나요. 그렇다면,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미 잃어버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수습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어쩌다 추측과 예언이 우리 언론의 민낯이 되어 버린 걸까요. 추측과 예언이 들어맞으면 언론은 자기 역할을 한 것일까요. 그게 언론일까요. 토토일까요.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번 환기해보았습니다.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태도야말로 어쩌면 삶을 살아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재능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이웃이라는 단어도 오래간만이다.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이사를 갈 때 같은 빌라 이웃에게 이사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이사를 가든 말든 관심이 없을 것 같다.
새로 이사 온 동네 역시 마찬가지다.
아파트라 더 심한 것 같다.
옆집에 누가 새로 이사 왔구나 몇 번 인사만 주고받을 뿐이다.
더 이상의 접근은 서로 불편할 것이다.
시대가 이웃이라는 존재도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