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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 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 손수현

by 행복 수집가 2022. 11. 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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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산문] 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 손수현
 

[에세이/산문] 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 손수현

75.
손수현
쪽: 
알에이치코리아
에세이/산문
316쪽
2022/10/10 완독
⭐️⭐️⭐️
💬
두 번째 삶이 있다고 해도 허우적 될 듯

가끔은 또 어디서 이상한 걸 듣고 와서는 실실거리며 묻는다. “언니. 팔만대장경 8만 번 필사할래, 아니면 대장내시경 8만 번 할래?” 나는 어이가 없어 웃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팔만대장경 8만 번 필사가 낫지. …..아. 젠장. 잠깐만. 아닌가. 헛움음이 나는 질문이란 걸 알면서도 진지하게 고민될 때가 있다. 특히 이 질문이 그랬다. “언니. 모르는 게 상책? 모르는 개 산책?”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고 정말로 고민이 되어서.

친구가 지어 준 내 좌우명은 ‘쇠뿔도 단숨에 빼라.’ 그러고 보니 이 속담 되게 별로다. 쇠뿔을 왜 빼. 상황을 비유하며 설명하는 것이 멋지긴 하지만 왜 하필 쇠뿔일까. 왜 하필 벼룩의 간이고 꿩 먹고 알을 왜 먹지. 고양이 없는 마음을 조심하라는 어느 유럽 마을의 속담이 문득 훌륭하다. 

얼마 전 깍두기를 직접 담그면서 깨달은 것은 김치에는 얼과 한도 있지만, 이 세상 모든 엄마의 수고로움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젠장. 웬만한 신생아보다 커다란 배추를 몇십 통이나 해결해야 한다니 그것은 민족의 얼이라기보다는 엄마의 설움이다.

지금은 연기하는 시간보다 글을 쓰거나 다른 걸 편집한다거나 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연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벌써 10년쯤 되었으니 새삼 그 시간이 길고도 짧다.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바늘구멍에 실을 꽂는 일은 똑같이 침을 묻히더라도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까. 실같이 마른 점이 유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을 떠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운전하는 것을 선호한다. 누군가는 편하게 기차 안에서 풍경을 맘껏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남이 운전해 주는 차에 몸을 싣는 걸 편안해할 수도 있다. 나는 보통 운전하기를 선택한다. 

동물보호 단체가 혹은 개인이, 논비건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생명을 먹는 일을 멈추라 외쳤고 누군가는 그 외침을 폭력이라 했다. 의아했다. 차별에 대한 저항을 폭력이라 부를 수 있다는 점이.

한 친구가 말했다. “요즘 책이 읽히질 않아.”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건물이 무너질까 봐 매일 무서워.”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나 요즘 매일 끝없이 유튜브를 틀어 놓게 돼.” “글씨가 미끄러져.” “감각이 예전만큼 잘 느껴지지 않아.”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자다가 무서워서 벌떡 일어나게 돼.” “별거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 “내가 쓸모가 있을까?”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 싶어….”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말했다. 어떻해. 왜 그러지?

우울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상황이 나아지면 금방 지나갈 일 아닐까. 그들의 말을 쉽게 들었다. 제일 먼저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는 일은 인간의 지능과는 관계없다는 사실을 요새 들어서야 깨닫고 있다. 그다음으로 소위 말하는 정신질환과 나와의 거리 두기를 떠올렸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정상성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나는 어떤 것들이 ‘비정상’으로 취급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정상 신체주의, 정상 가족, 이분법적인 성별 규정속에는 ‘정상적인’ 두 가지 성별만이 존재하고 천편일률적인 결혼 제도 안에서 ‘정상적인’ 성적 지향만이 존중되는 사회. 그 안에서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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