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by 행복 수집가 2022. 12. 1. 12:33

본문

320x100
반응형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번호: 85
작가: 헤르만 헤세
출판사: 민음사
카테고리: 소설
쪽: 494
완독일: 2022/11/25
상태: 완독
⭐️⭐️⭐️⭐️⭐️

💬
처음 읽는데 읽었던 느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우정은 야릇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우정에 호감을 가진 친구는 극소수였고, 때로는 당사자들 자신마저도 서로간의 우정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여자와 사랑은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와 사랑은 사실 그 어떤 말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여자는 단 한마디로 그에게 밀회의 장소를 지정해 주었고 다른 모든 것은 말로 하지 않았다. 그럼 대체 무엇으로 말한 것일까? 그래,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 다소 쉰 목소리에 깃들인 모종의 울림으로, 어쩌면 향기인지도 모를 그 무엇으로 말했다. 살결에서 은근히 풍겨오는 그 부드러운 향기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원할 때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얼마나 섬세한 비밀의 언어인가!

혼자 남게 된 골드문트는 행복하면서도 슬펐다. 나중에서야 빵과 베이컨이 생각나자 그는 외로운 식사를 했다. 벌써 캄캄한 밤중이었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뤼디아? 함께 달아나는 겁니다. 세상은 넓다구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겟어요!” 그녀가 하소연했다. “당신과 함께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어요. 저는 숲에서 잘 수 없어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머리칼에 지푸라기를 묻히고 다닐 수는 없다구요.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또 아버지한테 수모를 안겨드릴 수도 없어요. 그리니 안돼요. 그런 말 마세요. 공상과 현실은 달라요…..”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예술의 뿌리는, 또한 어쩌면 모든 정신의 뿌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덧없이 사라져가는 것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우리 자신의 가슴속에서도 우리 역시 덧없이 스러져갈 것이며 조만간 시들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술가로서 어떤 형상을 창조하거나 사상가로서 어떤 법칙을 탐구하고 생각을 정리할 때면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거대한 죽음의 무도로부터 구해 내려고 애쓴다. 우리 자신보다도 더 오래 지속될 무엇인가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골드문트에게 사랑의 쾌락은 진정으로 인생을 따뜻하게 해주고 가치로 가득 채워주는 유일한 계기였다. 명예욕을 몰랐기에 그에겐 주교나 거지나 아무 차이가 없었다. 장사나 재산이 그의 마음을 끌지도 못했다. 그는 그런 것을 경멸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털끝만치도 돈벌이에 자기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으며, 가끔 풍족하게 버는 돈을 아무 생각 없이 탕진했다. 여자들의 사랑, 이성간의 유희, 그것이 그에겐 가장 소중했다. 

아, 그리운 방랑 시절이여! 자유여! 달이 비치는 황야여! 이슬이 촉촉한 아침 잔디밭에 조심스레 찍힌 짐승의 발자국이여! 그런데 이곳 도시의 붙박이들 사이에 끼여들면서 모든 것이 너무나 편해지고 너무나 값싼 것이 되었다. 심지어 사랑조차도.

지나온 인생이 이토록 지리멸렬하고 황폐할 수 있단 말인가. 화려한 추억의 잔상은 풍부해도 수많은 조각으로 낱낱이 쪼개져 있으며 아무 가치도 없는 빈곤한 사랑일 뿐인 것이다! 아침에 길을 떠나면서 그는 불안하게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율리에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 얼마 전 주교의 성을 떠나오면서도 그는 이런 식으로 아그네스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지금 율리에 또한 보이지 않았다. 지나온 인생 모두가 이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하고, 달아나고, 잊혀지고, 빈 손에 얼어붙은 가슴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이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고, 아무 말도 없이 침울하게 말안장에 앉아 있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단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시간과 운명이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하고, 그리스어를 할 줄 알고, 자신의 감각을 죽이고 세속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과연 인간의 소임일까?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과 떠날 수는 없다. 사랑 하나만 믿고 따라가기에는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만약 골드문트가 부자라면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인가? 인간의 본성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둘 중 한 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누구를 선택할까?
이 책을 읽으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난 골드문트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골드문트가 더 인간적인 삶인 것 같다.
나르치스의 삶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책 내용이 골드문트의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럴 수도 있다.
만약 나르치스의 인생에 대해 더 자세히 나왔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골드문트는 계속 방황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다시 길을 떠난다.
끝까지 방랑자의 삶을 선택한다. 
한데 골드문트 외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틀에 갇혀 살아간다.
아무도 틀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나는 어떤가 생각하게 된다.
나도 틀 속에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골드문트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필요하다.

헤르만 헤세의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불리는 책이라 그런지 헤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싯다르타도 그렇고 얼마 전에 읽은 크눌프도 그렇고 헤세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인생 책으로 싯다르타를 선택할 정도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매력이 넘친다.
다음 책으로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 볼 예정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도 어릴 적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 기대가 크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