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by 행복줍기 2021. 11. 26. 06:00

본문

320x100
반응형

다정소감

 

다정소감 - 김혼비 산문집

다정소감
김혼비
안온북스 ∙ 에세이∙ 228p
125권 ∙ 2021.11.22 읽고

그에 비해 꼰대질은 줄지 않았다는 점이 새삼 놀라운데, 지구가 멸망해도 두 가지가 살아남는다면 바퀴벌레와 꼰대질이 아닐까 싶다. 바퀴벌레들이 꼰대질을 하겠지.

내가 인생의 여러 방향 중 남동쪽만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동쪽만 바라보며 천 번 걱정하고 만 번 고민한들, 죽어도 북서쪽은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제사’를 찾아보면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나온다. 빨간펜을 들어 이렇게 고쳐 써넣고 싶다. “(남자네 집안)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해봐야 전 부치는 걸 거드는 게 전부인 남자들이)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차별 집약적) 의식.”

남자 상사에게 시달리다 못해 있지도 않은 약혼자를 만들어내고, 현관 앞에 남자 구두를 갖다 놓아 있지도 않은 동거인을 만들어내고, 택시 뒷좌석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며 전화기 너머의 목격자를 만들어내고, 언제든지 성범죄로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는 경고성 사인을 보내기 위해 법조인 친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 호명하는 실체 없는 존재들. 우리의 귀신들. 

혼자 걷는 밤길, 혼자 혹은 누군가와 같이 타는 엘리베이터 등,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두렵다.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두렵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 

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열린책들, 2018)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책으로 인생이 바뀌려면 떨어지는 책에 맞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웃음을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회사까지 걸어가는 내내 이 말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인생의 흐름을 바꾼,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인생의 책’이라고 꼽을 만한 책들이 분명히 있다.

다정소감

728x90



알렉상드르 마트롱이 쓴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더불어 존재하는지도 잘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열어줬다.

어떤 좋은 책들은 사람을 오래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빠뜨릴 수 없다. 누군가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 없이 꼽았던 책이다. 

가장 괴로웠던 건, 매년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 날 밤마다 하곤 했던 ‘촛불 의식’이었다.  

그냥 ‘할머니’라고 쓰면 될 텐데, 그건 읽는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아버지의 엄마’로 이해해버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이외에도 장애인 비하가 들어가 있는 표현들, 이를테면 ‘꿀 먹은 벙어리’ ‘눈뜬 장님’ ‘눈먼 돈’ ‘앉은뱅이책상’ ‘절름발이 행정’ 같은 말도 역시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신 앞에서, 술과 커피 중 하나라는 일생일대의 질문 앞에서, 나의 대답은 역시 커피가 된다. 

 

다정소감



□□□
꼰대
내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제일 꼴 불견이 나이 먹고 꼰대짓 하는 거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정말 조심조심 한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꼰대 소리 듣기 좋은 세상이다. 
한데 가끔 보면 꼰대 소리도 귀담아 들을 말도 많다. 
이미 나보다 오래 산 사람으로서 경험해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꼰대 꼰대 하지만 꼰대 보다 더한 이상한 사람이 많은 게 더 문제인 것 같다.

□□■
제사
우리집도 매년 명절을 지내고 제사도 별도로 지낸다. 
명절만 되면 새벽 같이 일어나 멀지는 않지만 시골에 내려가 차례를 지냈다. 
큰집 먼저 들려서 지내고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차례를 지냈다. 
어릴 적이라 왜 한군데서 하지 않고 이쪽저쪽 힘들게 오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계속 그랬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골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온갖 음식을 하시느랴고 정신이 없다. 
남자들은 방에 앉아 TV를 보거나 음식을 가져다 주면 차례상에 보기 좋게 올려 놓는다. 
그리고 조상님에게는 남자들만 절을 한다. 
남자들만 할꺼면 저자의 말처럼 남자들이 음식 차리고 모든 준비를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도 남자지만 무언가 잘못 되어있다. 
더 심각한 건 식사 할 때 보면 여자는 밥을 제일 나중에 먹는다. 
밥상까지 다 차려 줬는데 기다리지 않는다. 
더더 심각한 건…. 입이 아프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해롭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꼭 그렇지는 않나보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